Wandersong 한글패치 후기
오랜 시간에 걸쳐 작업했던 완더송의 한글 패치를 드디어 공개하게 되네요.
원래는 이렇게 오래 끌 생각이 정말로 없었는데 ㅠㅠ
기다려 주신 분이 계신다면 정말로 죄송했고 또 감사드립니다...!
후기는 스포 신경 안 쓰고 작성할 테니 혹시 읽으실 분이 계시다면 염두 부탁드리겠습니다.
1. 왜 이렇게 늦었는가
이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아서 먼저 써 봅니다.
아마 쓰다 보면 되도 않는 변명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요...
우선은 게임 엔딩을 봤던 게 정확히 작년 12월 31일입니다.
지금 패치를 올리는 시점이 11월 27일이니까, 거의 11개월 걸린 셈이죠.
- 1월
가장 번역 속도가 빠르던 시기입니다.
이때 전체 분량의 40~50%정도를 끝냈던 것 같네요.
https://geminian.tistory.com/14
- 2월
2월 초부터 Osteoblast를 작업하기 시작했으며, 설날도 겹쳐 작업 속도가 확연히 느려진 시기입니다.
Osteoblast는 거의 일주일 만에 급하게 번역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번역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죠.
https://geminian.tistory.com/17
시간이 며칠만 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공식으로 들어가는 거다 보니 데드라인이 있어서...
이후 2월 말에는 조금 더 번역을 진행했지만, 이내 1학기 개강이 다가오고 맙니다.
- 3월~ 7월 초
1학기 개강이 다가오고 말았습니다. 사실 작년 1학기는 Virgo vs the Zodiac을 작업할 만한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블럭제가 생각보다 많이 빡셌네요.
하루 수업 시간이 기본 6~7시간에, 2~3주마다 시험을 보니, 미래의 저에게 공부를 떠넘기고 번역 같은 딴짓을 할 시간이 적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못 내는 건 아니었는데, 체력이 딸리더라고요...
결국 이 시기는 정신없이 지나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성적을 잘 챙겼냐 하면, 진짜 최하위권이라...😓
https://geminian.tistory.com/23
아무튼 번역을 아예 놓은 건 아니라서 한 20~30%? 정도 진행했던 것 같고, 여름방학이 될 시점에 아마 전체 분량의 80% 정도가 끝나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 7월 중 ~ 8월 초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우선 종강하자마자는 일주일 간 동아리 활동이 있었고,
또 그 다음 일주일 동안은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https://geminian.tistory.com/28
그 후에 2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다른 게임 하나 번역 건드리고 Keylocker 데모 번역하고 하면서 좀 시간을 많이 날린 것 같네요. 이때 확 집중해서 끝냈어야 했는데... 결국 개강을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 8월 중 ~ 9월 말
이때는 1학기와 마찬가지로 여유가 안 났던 데다가, 따로 외부적으로 번역 작업을 진행한 것도 있어서 더 속도가 느려졌던 것 같네요. 그래도 추석 연휴를 활용해 말장난 몇 개와 노래 파트 일부를 제외하면 모든 번역을 끝냈습니다. 그때가 9월 27일이었어요. 이제 검수만 하면 금방 공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10월 ~ 11월
2주 2주 1주 2주 2주 블럭을 연속으로 보내느라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중간에 TOEM 한글패치를 만들기는 했네요.
https://geminian.tistory.com/31
그래도 지난 주부터 그나마 좀 여유가 생겨서 2주 간 검수를 시작했고, 오늘 끝내게 되었습니다.
하여튼 정리하면 이렇게 되네요.
저에게는 체감상 한 2년은 되는 듯한 11개월이었습니다.
기다리셨던 분들은 더 길게 느껴지지 않으셨다면 좋겠네요...
2. 용사와 영웅
사실 게임 내에서 용사와 영웅은 원래 hero로 같은 단어입니다.
저는 이게 주인공으로써의 의미와 진짜 누군가를 구하는 영웅의 의미 두 가지를 지닌 중의적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웅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게임 내에서 오드리의 행적은... 글쎄요, 꽤 거리가 멀죠.
정말로 다른 사람들을 돕거나 구하고 싶어서 그러기보다는, 자신의 특별함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하는 면모가 돋보이니까요.
그래서, 오드리를 지칭하거나 세상을 끝내기 위한 역할로써의 hero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용사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반대로, 세상을 끝내는 것과 상관 없이, 누군가에게 아주 소중한 일을 해 주는 의미로 사용되는 Hero는 영웅으로 구분해서 번역했습니다. 거기에도 용사를 쓰기에는, 이타적인 느낌보다 용감하기만 한 느낌이 강했거든요.
왜, RPG 게임들 보면 꼭 용사는 남의 집 막 들어와서 항아리 깨고 상자 열고 그러잖아요ㅋㅋ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결국, 자기가 꼭 이야기 속 용사처럼 주인공이 될 수는 없어도, 누군가를 위해 선의를 베풀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영웅이 될 수 있는 법이니까요.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그래도 완더송의 주제에 더 부합하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아님 말고요...
아무튼 제 생각은 이랬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용사와 영웅이 섞여 나와도 이 부분이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도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Hero는 오드리 자체나 오드리의 역할을 지칭하기 때문에 거의 용사로 번역되었고, 영웅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부분은 1막 유령 사건을 해결하는 부분과 3막의 인어 부분, 6막에서 음유시인이 오드리한테 한소리 하는 장면 정도뿐이거든요.
사실 원문이 같은 단어인 걸 생각하면 티가 안 나는 게 가장 좋겠지만, 만약 신경이 쓰이신다면 번역할 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고 알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음유시인 / 미리암의 말투
음유시인은 존댓말을 씁니다!
원문이 영어인데 뭐 존댓말 반말이 어디 있느냐! 하시면 저도 할 말은 없지만...
남을 더 배려할 수 있는 말투가 있는데, 음유시인에게 그걸 안 줄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에게 있어 음유시인이 존댓말을 쓰는 건 약간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에게 말을 걸 때는 예외긴 하지만, 조금 더 친밀하게 다가가는 거라 생각해 주세요ㅎㅎ;
어려운 부분은... 음유시인이 미리암과 얘기할 때의 말투였습니다.
전 미리암만이 음유시인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처럼, 음유시인이 유일하게 말을 편하게 하는 상대가 미리암인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거든요.
그렇지만,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일단 음유시인이 미리암을 처음 만나는 1~2막 시점에서는 존댓말을 써야 할 텐데, 그럼 어느 순간에 반말로 바꿔야 하는 거죠?
4막이나 5막, 6막 같이 서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말을 틀 수는 있겠지만, 글쎄요, 전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말투가 바뀌는 시점을 아예 잘못 잡아 버리면, 플레이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뭐지? 얘는 왜 갑자기 말을 까는 거야?" 싶을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괜찮은 지점을 잡는다 해도... 그렇게 말을 놓는 장면이 생겨 버리는 건 번역하는 주제에 내용을 너무 과도하게 건드리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음유시인은 미리암에게 끝까지 존댓말을 쓰게 되었죠.
그런다고 해도, 그 둘의 사이가 더 멀어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네요.
4. 말장난들...
버고 vs 조디악도 그랬지만, 완더송도 말장난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게 말장난을 무시하고 지나가도 맥락에 아무 지장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또 말장난 위주로 굴러가는 대화가 많아서 그럴 수가 없었어요.
저도 말장난 번역하는 건 재밌다고 생각하는데, 이거 때문에 진행이 느려지니까 좀 답답하더라고요.
아오 우체부 놈
우체부인 시오반은 자기 생활과 연관된 주제의 말장난을 합니다.
대사가 40줄 정도 되는데 그 중 말장난 들어간 게 20줄입니다ㅡㅡ;
말장난을 하는 주제는 크게 우편과 추운 날씨, 식사, 말장난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고요.
번역한 결과물을 봤을 때 전 말장난 하나 정도 빼고 만족스러운 편인데,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사실, 썰렁해야 성공입니다ㅋㅋ
아오 석탄 알바
4막에서 하는 석탄 아르바이트의 레벨(칭호?)도 전부 말장난입니다.
원문은 주로 노래 제목을 가져와서 석탄이나 불과 관련된 말장난으로 살짝 바꿔놓은 드립이었는데,
전 우리나라 노래도 별로 아는 게 없고 해서 석탄, 불과 관련된 말장난이라는 점만 살렸습니다.
레벨은 총 13까지 있는데, 설마 이걸 다 보시는 분이 있을까 싶긴 하네요.
다음은 마음의 요정입니다. 고양이는 귀여우니까 봐줘야 하나...?
얘는 말투 자체에 온갖 고양이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me를 전부 meow로 쓰는 게 있죠. (이거는 나 -> 냐로 번역했습니다)
얘도 난감하긴 했는데, 그래도 앞에 두 개에 비하면 뭐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하여튼 최대한 열심히 머리를 굴려 봤습니다.
시간이 나면 말장난 번역했던 것들을 원문과 함께 올려볼까 하는 생각도 있는데, 또 자기 말장난 자기가 설명하는 만큼 추한 게 없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5. 노래
노래 역시 어려운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일단 한두 노래를 제외하면 각 소절 별로 음절 수가 있는데, 여기에 맞춰서 번역을 해야 했거든요.
하지만 정말 어려운 점은... 제가 노래를 번역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뭐 음절이야 어떻게 맞춘다 치고 노래를 번역해 봐도, 그냥 대화를 번역한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이 부분은 한글패치를 공개한 지금 시점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없어서... 그냥 의미 전달만 되는 수준에서 만족하고 있습니다ㅠㅠ...
별 문제 없이 느껴지신다면 다행이겠지만, 잘 모르겠네요...
6. 문체
이번 한글 패치가 어려웠던 점 중에 하나는, 문장의 스타일이었습니다.
인물들의 대사가 엄청 구어체적인데, 대명사는 자주 등장하면서 그 대사가 여러 번에 나눠 끊겼거든요.
우선 구어체적인 부분부터 얘기해 볼게요.
일단 채움말이 많았습니다. oh나 um 같이 그냥 말하면서 들어가는 말들 있잖아요.
그거야 적당히 번역하거나 생략하면 되지 않냐 하실 수 있는데, 완더송의 문장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인 즉슨, 한 문장이 심하면 네 번까지 나뉘어 출력되거든요.
또, 그 안에서도 말하는 템포를 위해 구분하는 특수 문자가 대사 파일 내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ABCD인 문장을 옮길 때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BADC 이런 식으로 옮기고 싶어도, 그러기가 어려웠고 왠만하면 ABCD 순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예외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랬습니다.
거기다 대명사까지 잔뜩 써서, 맥락을 알더라도 문장으로 옮기기가 애매했고요.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표현했을 때 완더송의 문장이 저에게 있어서 어떤 느낌이었냐면,
아니 저기 그걸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저 뭐냐 그 하던 대로 잘 해야지~ |
이런 문장을
아니 / 저기 그걸 그렇게 하면 안 되고 / 저 뭐냐 / 그 하던 대로 잘 해야지~ |
저렇게 끊어서 순서 최대한 유지하며 번역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한국인인 저희는 당연히 이해가 쉬운 문장이죠. 그렇지만 이걸 다른 나라 말로 느낌과 어순 유지하면서 번역하려 하면, 꽤나 빡셀 겁니다.
마찬가지로 완더송의 문장도 그냥 제가 읽으면서 플레이할 때는 어렵지 않았는데, 막상 옮기려니까 꽤나 골치 아프더라구요.
능력 부족 아니냐 하시면 할 말은 없지만... 그냥 제가 느끼기엔 그랬습니다.
마치며
11개월의 긴 고생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제대로 번역한 시간만 따지면 훨씬 짧겠지만 아무튼요)
끝나고 나니 정말 홀가분하네요.
사실 번역을 하면서 저 같이 무채색에 사람이 이런 컬러풀하고 감동적인 게임을 번역하는 게 맞는 건가 스스로 여러 번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결국 한글 패치를 완성했던 건 부담감 쪽이 더 강하긴 했지만, 그래도 초반에 대부분의 내용을 번역했을 때는 어느 정도 열정이 있었으니 뭐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한 해를 보내면서, 아무래도 학교 생활로 지쳤던 게 큰 것 같습니다.
이미 성적은 바닥인 데다 1년 더 하게 생긴 마당에 지쳤느니 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정말로 지쳤어요.
그래도,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은 특별하다며 응원을 해 주는 게 완더송의 매력이자 감동 포인트니까요.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제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드네요.
기다려 주신 분들 정말로 너무 죄송했고 감사했습니다.
이 후기를 읽을 분이 계실진 모르겠지만, 읽어 주셨다면 더더욱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정말 정말 정말로 감사해요!!!